지난 7일 오후 경남 통영시 광도면 안정국가산업단지. 바닷물을 막아 만든 4만여평의 도크(Dock)에는
콘크리트 구조물 4개가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길이 180m, 무게 4만6000t에 달하는
이 구조물은 배가 아니라 해저터널이 될 함체다. 올 연말이면 바닷속에 묻혀 부산 가덕도와 경남
거제도를 해저로 연결하게 된다. 한국건설의 기술 수준을 한 차원 높일 해저터널의 건설 현장이다.
이곳 해저터널은 지상에서 미리 만든 함체를 현장으로 옮겨 묻는 ‘침매터널(Immersed
Tunnel)’ 방식으로 건설된다. 국내 최초의 도전이자 세계 최장의 침매터널 공사다. 오는 10월쯤
1차로 4개의 함체가 완성되면 도크의 수문을 열 계획이다. 앞뒤를 격벽으로 막은 함체는 부력에 의해
수면위로 30㎝정도 떠오른 상태에서 터널 현장으로 이동한다. 부력은 함체 속에 들어 있는 물탱크를
통해 조절한다.
부산 가덕도 앞바다에는 해저터널의 바닥을 다지는 작업이 한창이다. 바닥에 쌓인 진흙을 걷어내고
모래기둥을 심어 지반을 다진다. 바닥에는 자갈과 모래를 깔고 그 위에 함체를 올린다. 함체를 연결한
뒤 내부벽을 트고 다시 뜨지 않도록 구조물 안쪽 바닥에 콘크리트를 채운다. 터널 위에 다시 150㎝
이상 자갈로 덮으면 해저터널이 완성된다.
혹시 해저터널에 물이 새지는 않을까. 이같은 우려에 대해 현장 기술자들은 “침수 가능성은 0%”라고
잘라 말했다. 해저터널의 함체 제작을 위해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콘크리트 전문가들이 대거 결집했다.
월성원자력 3·4호기 건설에 참여했던 박성배 대우건설 토목사업본부 부장은 “100년 후 콘트리트 속의
철근 부식화율이 10% 미만”이라며 “침수는 물론 콘크리트 속의 철근도 거의 부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함체 제작 현장에서는 방수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구조물의 두께는 133㎝에 달하고 콘크리트
성분도 일반 건축물과는 다르다. 또 함체 표면을 손으로 만져 봤더니 유리처럼 매끈했다. 함체를
제작하기 전에 2차례에 걸쳐 4분의1 크기의 미니 함체를 제작한다고 했다.
콘크리트 타설 업무를 맡아 침매터털 공사에 참여 중인 VSL코리아 임문환 현장소장은 “구조물을
치밀하게 만들기 위해 제철소 고로에서 나오는 고로슬레그,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플라이애쉬 등 분말도가
높은 물질을 섞는다”며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공극의 치밀함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봉선 대우건설 토목사업부 차장은 “모래도 국산은 염분이 소량 섞여 있어 전량 중국에서 강모래를
수입해서 쓴다”며 “최근 중국 당국이 모래 수출금지 조치를 내려 수입 재개를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체의 격벽 제작을 맡고 있는 전문건설업체 유벡의 이오욱 상무도 월성원자력 2·3·4호기
건설에 참여했던 베테랑이다. 그는 “바닷속에서 엄청난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고강도 경량 철판이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별도로 주문했다”며 “국내에서 처음 하는 공사이지만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가대교는 총 길이 8.2㎞로 침매터널(3.7㎞)과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사장교 2개(1.6㎞),
접속교(1.9㎞), 터널 2개 등으로 구성된다. 가덕도에서 중죽도를 잇는 해저터널 구간은 높이
9.75m, 왕복 4차로의 너비 26.5m, 길이 180m짜리 콘크리트 터널 구조물 18개를 이어서
건설된다.
세계적으로 침매터널 시공 능력을 가진 나라는 미국, 일본, 덴마크, 네덜란드 정도.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거가대교의 침매터널은 각종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우선 함체의 길이가 180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외국에서는 140m가 대부분이고, 일본은 100m를 주로 쓴다. 또 침매터널이
들어서는 현장의 수심이 최고 48m에 달하는 점도 난공사로 꼽히는 이유다.
해저터널 구간도 처음에는 교량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진해만을 오가는 해군 함정과 부산 신항을 드나드는
대형 선박들의 보다 자유로운 통행을 위해 해저터널로 변경됐다. 교량의 경우 유사시 파괴됐을 때 항로를
봉쇄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오는 2010년 12월 거가대교가 준공되면 부산~거제 거리는 기존
140㎞에서 60㎞로 단축된다. 통행시간은 3시간에서 40분으로 줄어든다. 이에 따라 연간
4000억원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또 거제 조선단지에서 생산된 각종 수출입 화물도
거가대교를 통해 현재 건설 중인 부산신항에서 처리된다.
통영 = 문화일보 박영출기자
equality@munhwa.com
- 출처
■침매터널이란
침매터널은 지상에서 미리 제작한 함체를 건설 현장으로 이동시킨 뒤 수중에 파묻는 방식으로 건설하는
터널이다. 지하를 굴착하는 방식의 터널은 단단한 지반에서만 가능하지만 침매터널은 연약지반에서도 건설할
수 있다. 현재 일본·중국·유럽 등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140여개의 침매터널이 건설돼 있다. 이번
거가대교의 침매터널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과 스웨덴 남서부를 잇는 오레순트대교가 모델이 됐다.
